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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사이 비내리고

포근하던날 어제였는데

찬바람 불어들고 감기조심해야할 오늘이네요.(11/5)

 

남한산성가는길

계절마다 아름다움 가득한 길이지만  가을이 그중 으뜸이라 생각하며

성남쪽보다 달리기편한 광주쪽으로 우회

차창으로 보여지는 고운단풍에 감탄사 절로 나옵니다.

 

 

 

나무들은 알고있으려나 자신이 얼마나 고운빛인지

바라보는 마음에 얼마나 큰 감동 안겨주는지

옆지기는 아름다운 풍경에 저기좀 봐 아름답지 곱지 저기좀 보라니까?

딸딸들 아름다운것에 왜 이리 무감각한것인지

정서적으로 메말라있나..?

응답이 없다.

 

수주야 아름다운 풍경 보라니까?

아빠 다 보고있어요.

보고있는데 왜 자꾸보라 하세요.

안전운전이나 하시지..

허~

보았으면 담아지는것 느껴지는것 없니

...................................................

아빠 아름다워요..^^..

 

 

 주차시키려 이리저리 돌아보지만 빈자리없어 후미진 공터에 세우고

신발끈 조여 매는데.

 

아빠  지금도 밤있으려나요 하며 수주가 산아래 밤나무아래로

우와 밤이다

아빠 밤하나 주웠어요.

밤나무아래 밤송이 살펴보며 마른밤 몇알주운 수주 표정이 밝다.

아빠 밤줍는 재미 쏠쏠하네요.

 

 

 애들아 그냥 이리 올라가자

조금 올라가면 성나올거야.

 

 

 수야 너 남한산성에 대하여 알고있니

오랑캐가 쳐들어와 인조왕이 남한산성에서 싸우다 삼전도에서 항복한곳이잖아요.

주야는 무엇알고있니

당파싸움 효종의 북벌정책 그리고....최만리...최씨...후후

 

 

남한산성 굴욕의 역사 안고있는곳

삼전도에 나가 청 태종앞에 머리 조아리며 신하됨을 인정한곳

국가의 정치,경제,외교,국방이 얼마나 중요한가을 보여주는 교육의 장

조상들의 피눈물을 교훈삼아 총력을 기울여야하건만

아직도 우리는 강대국의 틈새에서 제자리못?O고있는듯 싶다.

 

후금의 정묘호란

청나라의 병자호란 그 침략의역사 알고 있는것인지 그 굴욕을 잊은것은 아닌지

산성 돌아들며 병자년 그날의 처절했던 모습 그려져

불어드는 찬바람이 아프다.

 

여진(女眞)의 후금(後金) 만주에서 발흥(發興)

혼란한 국제정세에 현명한 외교정책으로 전란을 피했던 광해군

폭군이라는 이름으로 당쟁에 희생되어 쫓겨나고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서인에의해 왕위에오른 인조

향명배금(向明徘金)명나라을 쫓고 후금을 배척하는정책 앞세우니

이에 후금은 배후을 위협하는 조선을 정복하여 후한을 없애고 명나라와의 싸움으로 끊긴 물자교류

물자부족의 타개책으로 누루하치사후 왕위에오른 홍타시(후금의 태종)는

1627년1월 아민(阿敏)이 3만의 후금군과 강홍립등 조선인을 길잡이로 압록강건너 의주 공략

평양,황주장악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

2월9일 화친요구 강화조약체결하게 되었다.

내용은 양국은 형제국이며 명나라와국교을 끊고  조선은 왕자을 인질로 청나라에 보낸다.

이같은 조건으로 정묘조약을 맺고3월3일 조약 조인식을 가졌다

인조5년(1627)후금의 칩입으로 일어난 조선과후금의 전쟁을  정묘호란(丁卯胡亂)이라한다.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인조14년) 12월 ~1637년1월 청나라의 2차침략

 

후금은 1632년 만주지역 모두을 점령하고 심양을 수도로 정하고 조선에 형제지국에서

군신지의(君臣之義)로 고칠것과황금, 백금1만냥.전마3000필등 세폐(歲幣)요구

이에 인조는  결전을 결심

 

1636년4월 후금 홍타시는 황제를 자칭하고 국호를 청(淸)이라 고치고

조선에 척화론자들을 인질로보내 사죄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위협

 

1636년 12월 2일

조선의 도전적 태도에 분개한 청 태종은 청,몽고,한족으로 편성한 10만대군을 동원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 온다.

조선에 군대는 있었으나 청군은 거침없이 대로을 따라 서울로 진격

 

종묘사직의 신주와 세자빈,원손,봉임대군,인평대군등은 강화도로 피난

14일 인조는 길이막혀 강화도로 피하지 못하고 소현세자 백관들과 남한산성으로 피난

16일에 청군은 남한산성을 포위하였고

1637년 1월1일 청태종이 도착하려 남한산성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병자년의 겨울은 혹독하였으며 노숙한 장수들과 군사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힘이없었고

성안의 풍경이 그러했으니 성밖 백성들의 고초는 말로다 할수없음이였다.

조정안에서는 최명길등 주화파와 김상헌등 척화파 사이에 논쟁이 거듭되다가

인조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기로 하였다.

 

정축년(1637) 1월30일 인조는 세자등 호행500백명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을 나와

송파 삼전도에 설치된 수항단에서 청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례을 올렸다.

 

청나라의 맹약에따라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인질로

척화의주모 홍익한,윤집,오달재등 삼학사을 심양에 끌고가 처형시켰고

조선은 명나라와관계을 끊고 청나라에 복속(服屬)하게 되었다.

 

1645년 10년의 볼모끝에 소현세자,봉림대군이 환국 하였으나

세자는 2개월만에 죽고 인조의 뒤을 이어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그분이 효종(孝宗)이시다.

효종은 황위에 오르자 굴욕을 되새기며 북벌계확을 추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형형색색 담고있는 이날의 남한산성

옛시절의 역사 마음에 새겨보며 깨달음과 배움이 터전이 되어야 하건만

높은곳에서 노닐고있는 큰 고기떼들의 모습

정신 못차리고 우왕좌왕 입만 벌리는 모습

시절의 당쟁과 그무엇이 다르며

삼국이 일국되고 일국이 이국되어진

이나라의 현실이 안탑깝기만 하다.

 

우리는 언제 우리만의   소리 내며

당당히 우뚝설수있으려는지

현명한 외교

튼튼한 국방

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어울림되는 대한국인 이였으면 싶다.

 

아빠

무슨생각을 그리 하세요.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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