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3일
해질녁 집으로 드는길
오산리 천주교 서울대교구 묘지에 들렸습니다.
김수환추기경님 모셔진 곳으로 많이 알려졌지요.
산성집에서 고개하나 사이에 있기에
마음 가면 자주 들려보는 곳입니다.
산성은 현재 무교 입니다.
0~3 무당 수양 어머니집
4~5살적 어머니 손잡고 성당 드나들었고
중.고시절에는 교회 열심 나갔고
그후로는 산에가며 절지나쳐 갔습니다.
진실로 믿음은 교회나갈적이였은듯 싶은데
고2시절 목사님과의 몇번의 의견다름으로 멀어져
무교가 되었습니다.
무교라해서 믿음없다하기는 그러하구요.
성당가면 성당대로
교회가면 그나름으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절에들면 목례하는
어디들어도 손마주잡고 마음기도 하네요.
하나도 없지만 다 가지고 있음이기도 하지요.
^^
믿음가는곳 어디인지 아직입니다.
^^
참사랑은 무력하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무력하다.
어떠한 고통도 죽음까지도 받아들인다.
이처럼 가장 무력하면서도 가장 강인한 것이기에
사랑은 온 세상을 분쟁과 갈등과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는 구원의 첩경이다.
“경찰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보게 될 것이고 나를 쓰러뜨리고야 신부님들을 볼 것이고 신부님들을 쓰러뜨리고야 수녀님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그 다음에나 볼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6 10 항쟁 때-
“저는 하느님 앞에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말로만 사랑을 말하고 참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2002년 12월 송년 인터뷰에서-
우리도 사랑의 바보가 되자 해마다 입춘이면 꽃망울을 터뜨렸던 매화가 아직 꼼짝도 안 하는 걸 보면 이번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알겠다. 만나면 추기경님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나누던 박완서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내 마음은 더욱 추웠던 것 같다. 설 연휴엔 이태석 신부님을 주인공으로 한 추모 영화 ‘울지마 톤즈’를 반복해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시대의 성인이라 부르는 것 아니겠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갈수록 더 그리워하며 닮고 싶어 하는 그런 분들 말이에요. ” 오늘 아침 객실에서 함께 식사한 독일인 토마스 팀테 신부님의 말을 듣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 사랑은 과분했다 하시고 베푼 사랑은 늘 부족했다고 고백하신 분, 썩 훌륭하진 않아도 조금 괜찮은 구석이 있는 성직자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하신 김수환 추기경님, 그분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움직이게 한 걸까. 선종하신 이후에도 끊임없이 용인의 묘소를 성지 순례하듯 가고 싶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욕심 없는 사랑의 나눔과 겸손으로 일관된 삶이 남긴 감동과 향기의 여운 덕택이 아닐까 한다.
“꼭 시성식을 하지 않더라도 바로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이태석 신부님처럼 살다 가신 분을
이해인 수녀님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