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고 성장하며

그 시간 세월에 만나고 헤어진 많은 얼굴들

누군가는 선명하고 어떤 이는 가물가물 흐릿하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나를 좋아해준 사람

아낌과 배려의 마음으로 함께한 가족 친구들

살아오는 동안 기억에 담아져있는 그들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조현리

용문역에서 용문산 가는 길목 중간에 위치한 곳으로

용문산계곡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중원산에서 내려오는 냇물이 있어

산 좋고 물 맑은 마음 좋은 농부들이 흙을 일구며 살아가던 농촌

동네초입 운동장에 소나무군락 높았던 미루나무 아담한 학교

학교 종소리가 잘 들리던 초가집에서 1960년 음력 7월 첫 울음 터트렸지요.

 

아무것도 기억되지 아니하는 시간

잉태부터 3살까지 그 후로 사건 사고에 따라 순간 기억들이

남아있습니다.

 

홀로의집

부모님은 논 밭 일 나가시고

형 누나는 학교 갔을 시간

안채 툇마루에 앚아 똘똘이 만지며 놀고 있는 아이

장난감이 없던 시절 내 몸이 장난감

그러던 어느 날 마루에서 다리 흔들다 원심력에 앞으로 고구라져 이마 뽀족돌에 부딪쳐

이마가 들어가 그 자욱은 아직도 남아있네요.

4살에서 5살 사이였을듯 여물지 않은 이마에 평생기억 자욱

 

내 기억에는 없지만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

4살즈음 옆집 동갑나이 혜정이와 놀이

울집과 혜정이네 뜨락에 심은 호박 새순을 전부 잘라서

혼을 냈던 일 있으셨다네요.

 

시절 집에 말굽자석

자석에 줄을 이여 동네 이곳 저곳

철 붙으라고 돌아들어 어른이 되어지면 저놈은  고물장사가 될것이라 생각 하셨 다는데

고물장사 했더라면 성공 했을까요

 

시절에 대 공사

집안에 우물파기 몇 살이였는지는 정확치 아니하지만

어느날부터 아버지 어머니는 땅을 파기 시작하였어요.

찰흙 나와 이것 저것 만들었던 기억

농사일 하시며 파 내려간 우물 몇 년 걸리신듯 싶어요.

정확한것은 형 누나에게 들어봐야 할듯 싶은

얼마나 걸렸으려는지 심히 궁굼해지네요.

파고 쌓고 파고 쌓고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아니하던 우물 상당히 깊었던 기억

다른이의 손 빌리지 아니하고 판 우물

아버지 어머니 가족들의 노력이 대단 했을듯 싶습니다.

저는 너무 어렸어요.

당시 기억으로 집안에 우물이 있던 집 극히 드물어

뒷산아래 샘터에서 물 길어다 먹는 집이 많었은듯 싶어요.

기억으로 샘이 깊었는데

제 바로 위 형이 어릴때 샘에 빠져 죽을번 했다네요.

우물에서 나온 흙들은 집앞 마당 다지는데 쓰였은듯 싶어요.

우물을 파면서 아버지는 새 대문도 만들고 계셨는데

10년전 옛집에 가보니 시절에 아버지가 만드신 대문이 아직도 달려있었습니다.

대단했습니다.

 

어느날 낮에 손을 비어 피가 나니

대문을 향해 피 뿌려

무섭게 혼나고 어머니는 그 피 지우시는라 애 쓰시던 모습

눈에 선하게 그려지네요.

많이 맞았던 날  생각만으로도 죄송합니다.

 

시절에 어머니

병명 정확하지 않지만

위장병으로 고생이 많으셨은듯

알수없지만 한번 쓰러지시면 기차타고 서울로 가셨는데

몇날 아버지 어머니 없이 지나던 날들있었어요.

 

오래된 사진 5살즈음 형이 살고있는 서울에 갔던 기억

당숙 어른집이 보이고 미아리 어느 식당에 설렁탕 파가득 음식 떠오르네요.

어릴때 파 무자게 싫어했어요.

파는 싫어~

 

여름이면 앞개울에서 잠수 개헤엄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겨울이면 빙판에서 썰매

솜씨 좋으셨던 아버지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의자 붙은 썰매 만들어 주셨지요.

인기가 대단했던 썰매

동네 아이들이 한번만 타게 해달라고 조르곤 했지요.

 

그런 시절이 지나고 초등학교에 입학

손수건 옷에달고 학교가는 학생이 된것이지요.

1학년 2반 담임 임홍자 선생님

선생님은 옆집 혜정이네 건너방에 계셨는데

처음 이사오는날 하늘에 선녀가 내려온줄 알았어요.

서울에서 오신 임홍자 선생님

잊어지지 아니하는 기억이네요.

 

 

 

다음 시간에~^^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써보는 기억의 글입니다.

시간 여유 되어지면 다시금 정리해 보려구요.

 

 

 

청소하시는 여사님 솜씨^^

 

 

 

송화

노란 가루는 다 날아가고 쭉정이만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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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

사랑 많이 받기만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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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12월 말일 섣달그믐

우리 우리설날은 오늘 이래요

1월1일

마무리도 중하고 새날도 중하다

 

설 명절이 다가오는데 마음이 싱숭생숭

다른 해 같으면 세배 돈 준비마음 이여야 하는데

오고 가지 말아야하는 거리두기로 잠 재워야 할까보다.

세배 돈 받을 마음으로 기다려온 아이들은 목표달성이 쉽지 않아

크게 실망하는 명절로 기억되어질듯 싶다.

 

참석인원이 없으니 차례 상 차림도 간소화되어

상인들의 주머니도 가벼워질듯 싶은

이래저래 쉽지 않은 시절이다.

 

설 명절이 다음주

거리두기 연장으로 가족 만남도 어려워질듯

기준 5명 부모님에 아들내외 손녀만 함께해도 기준이 넘어버리니

차례도 영상화면 띄우고 장거리 세배에 세배 돈은 통장 입금

그리 되어질듯도 싶습니다.

영상시대

 

설 명절 가족 간의 만남

코로나19로 지난 1년간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보고픈 것도

설에는 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셨을 부모님들 상실감이 크실 듯 그리움에 병 생기실까 걱정되기도 한다.

노인들에게 희망은 명절에 찿아주는 자식들 바래기일수도 있기에

좋은 해결책이 마련되었으면 싶다.

 

부모 된 마음은 늘 애 뜻하여

나이든 자식일지라도 늘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실상 자식이 나이든 부모 염려하는 것이 도리지만

부모의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자식 걱정이다.

 

오래전

어머니 살아 실제 에구 우리 막내 왔구먼 하시며 엉덩이 토닥토닥

딸 수와주 왜 할머니는 아빠 애기 다루시듯 토닥토닥 하신데요.

아빠도 할머니 아기였으니까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 지난 한해 한번 7월에 면회

그 마저 창문 사이로 뵈었다.

치매가 깊으신 장모님 혹여 자식들 못 알아보실까 걱정되기도 하는 이즈음입니다.

 

마스크착용하고 말 줄이고

나름의 거리두기하면 명절 가족 간의 만남은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설 명절에 난 뭘 해야 하지

너 당직이야

그러하네요. 전 까치 설날에 당직근무입니다.

 

따스한 봄날이 빨리 왔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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