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동환 개인전

 

제목 : After Dada

 

장소 : 가나아트 스페이스

 

일시 : 2009.09.23(수)- 29(화)

 

시간:AM10~PM7시

 

초대일시: 2009.09.23(수) 18:00

 


            최후의 만찬

 

After Dada; Evolution of 'Tagg+Burgin+Bang' Form

다다를 모방하여; 택+버긴+방’형식으로 진화하기


                                                               

                                                             남 택운(영상문화평론가)



  방동환은 이번 전시 주제를 ‘After Dada’라는 이름으로 하고 싶다고 하였다. 지난 전시에 나왔던 사진도 지난 전시에 비하여 다른 새로운 기법을 보여주었는데, 이번 사진도 다시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렇게 변화의 주기를 자주 보여주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예술적 표현을 한정짓는다. 예술가는 일정기간에 한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이 일관성에서 벗어나면 실용성이 떨어지는 것이고, 새로운 모험이며 관람자는 혼란스러워 한다. 또한 예술은 정치와는 먼 것이고, 더욱이 하나의 언어로 본다거나 다양한 이론으로 보는 것을 곤란해 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격렬하게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정한다. 우리나라에서 예술을 학문화해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전문가나 학생이 아니고서는 일반인은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관심을 가진 극소수가 아닌 나머지 사람들은 예술과 철학과 정치는 모두 다른 것이고,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절약하면 그것이 최선인 삶의 방식이었다.

  

       쥐.  워홀. 리히텐슈타인; 위험지역

 

  다소 나의 주장이 기이하게 보일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의 대중들에게 최근에 발생하는 사회적인 사건과 드라마는 우리의 문화적인 척도를 반영해 주고 있는데, 다양한 엽기적인 연쇄 사건들과 몇 번씩 반전하는 황 모 교수사건 그리고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부터 ‘찬란한 유산’에 이르기 까지 우리의 관념을 흔들어 놓는 모티브는 우리를 고난도로 훈련시키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세계경제 위기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북핵문제와 진보 보수 갈등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는 한층 더 강도 높게 우리를 단련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어떤 알 수 없는 개념을 마주하면서 위태롭게 살아가기에 대한 풍토적인 준비는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다이내믹하면서도 아방가르드적인 정치경제와 사회적 사건 그리고 대중문화 현상들이 새로운 예술 형태를 이해하는 데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방동환은 놓치지 않았다. 이전의 방법론들을 세탁하면서 새로운 이론들은 접목하여 자신의 작품에 저장하였다. 미술사 속에서 다다는 처음으로 현실과 미술의 경계를 허문 예술운동이지 않은가.     

 

 

            소. 실내. 고호; 모조품


  사진이 미술계에 두 번째로 조명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이다. 이 두 번째는 첫 번째와는 다르게 나타났다. 첫 번째는 팝아트에서 사진을 전사나 실크스크린, 인쇄처럼 대중문화적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물론 다다의 실험실에서 드러났던 것을 증폭시킨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에는 아예 사진을 몸으로 들고 나왔다. 사진을 지표로 보기 시작한 것은 개념미술이었다. 그런데 점차 도상으로 옮겨가면서 많은 미술가들이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신디 셔먼의 작품을 사진으로만 보기 보다는 현대미술로 보는 것이 더 적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제는 영상문화로 보는 것이 더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이제는 미술이나 사진을 문화이론 또는 문화사와 같은 다른 공간으로 보고자 하는 작가와 이론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재현의 방식을 가지는 평면예술이고, 디지털과 인터넷 또는 인쇄출판 형식이라는 대중성을 가지면서도 회화나 조각보다 손쉬운 매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점에서 사진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사진은 객관적인 사실을 전유하는 하나의 제도이면서도 미술처럼 동일한 제도적 구조와 패러다임 속에 갇혀 있지도 않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언어이기도 하다.

  

 

                         용. 폐유. 히로시게; 도피

 

  존 택(John Tagg)과 빅터 버긴(Victor Burgin)의 주장을 덧붙이고자 한다. 먼저, 택은 사진의 특성을 객관적인 사실을 복사하는 것도 생산 동기나 제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화상형식이며, 특정한 맥락과 세력에 의해서 대체로 한정된 목적을 위해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기구라는 것이다. 그는 사진사가 이기 보다는 영상문화(Visual Culture)와 재현의 역사, 재현의 실제 문제들을 제기하려 한다면서, 급진적인 문학은 동일한 정전을 정리하고 동일한 텍스트를 다시 읽는 것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이에 버긴은 사회현실이 시각적 재현의 테크놀로지와 의미화 형식들에 의해 구성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급미술이 사회생활과 정치적 삶의 일상세계로부터 분리된 자율적 활동영역으로 존재하며, 문명화하는 인간적 가치의 영역을 비인간적인 테크놀로지의 맥락으로부터 보존하고 고양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뱀. 돌풍. 후쿠사이; 허위


  방동환의 이번 작품들에서 전복(subversive)적으로 보이는 것은‘현전(presence)’의 존재가능성과 변화의 가능성을 보게 하기 때문이며, ‘택+버긴’의 이론이 ‘택+버긴+방’형식으로 진화되어 한국의 사회문화적인 재현의 문제를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의미화하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독창성, 유일무이성, 진품성 등의 물신성을 부인한다. 보나르, 고호, 로빈슨, 드가, 마네, 피사로, 다빈치의 작품들과 대중스타 그리고 일본의 목판화 들을 차용하여 미술의 자율적 보존성을 대비시킨다. 그러므로 이 작품들은 미술관 속에서만  고고하게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진품들과 차이나는 것만이 아니라 데리다의 ‘차연’을 드러내고 있다. 차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새로운 의미로 전이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의 사진은 한국의 맥락 속에서 다시 읽기를 하여 한국적 명화로 구성하기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양. 대중스타. 길; 허구


  먼저,「쥐. 워홀. 리히텐슈타인; 위험지역」은 피에르 보나르의 「아침식탁」을 주요 구성으로 사용하면서, 모형으로 만든 쥐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앤디 워홀의 「자화상」과 「체 게바라」를 배경으로 인용하고 있다. 보나르의 회화는 중산층의 삶의 단편과 기억을 아름답게 처리하였는데 비하여 이 작품에서는 구성하기 방식을 이용하여 해체되고 파괴된 실내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쥐는 가정의 메타포로 읽혀지며, 현대사회의 잔인함과 파괴성이 혼재된 가정의 실내를 폭로하고 있다. 「소. 실내. 고호; 모조품」

에서도 실내는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붕대감은 소를 제프 월이나 고호처럼 대문자 예술가로 연출시킨다. 허상적인 예술계의 많은 신화나 작가론에 대한 비판을 내용으로 예술에 관한 진리와 허구를 의미하는 듯하다. 「호랑이. 알약. 카파; 중독」에서는 로버트 카파의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 「Spanish Loyalist at the Instead of Death」을 모티브로 인용하면서 병사를 자신의 페르소나인 모조 호랑이로 변용시켜 약물 중독의 공격으로부터 장렬히 쓰러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어두운 주변의 환경과 제약들만 과일처럼 매달린 나무는 척박해진 자연과 끝없이 생산되는 의약시스템을 설명한다.

  

 

           개. 석면. 밀레; 파종

 

  방동환의 ‘After Dada’는  제목에서도 새로운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양. 대중스타. 길; 허구」에서 처럼 인용되고 있는 작품이나 소재를 참고문헌처럼 배열한다. 또한 모조물을 등장시켜 말하고자하는 주제를 상징처럼 함축하며, 이것이 배치되면서 허구와 대중문화의 중독이라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는 사진에 관하여 택이 말한 ‘한정된 목적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보고 있는 것이며, 버긴의 주장처럼 ‘사회현실을 시각적 재현의 테크놀로지와 의미화 형식들로 구성’하기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방동환은 현대사진의 글쓰기 방식을 모험하면서 다시 제안하고 있다. 




 

돼지. 가루지기. 마네; 성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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