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탕폭포(09:50)~태봉대교~송대소~마당바위~승일교~고석정(14:20)

(수원 영통산악회 트레킹팀)




새해첫주 흐름따라 갑니다.

한탄강 얼음트레킹

사람이 움직이는것은 살아있기에 그러하지요.

물도 그러하지요

흐르지 않는 물은 죽은물이 되어지니까요.

임진강 상류 한탄강

현무암 용암대지인 철원은 기암괴석 절벽이 어울림되어 근사한 경치을 담아내고 있는 곳이지요.


직탕폭포,주상절리,기암 절벽,

철원 제일의 명승지 고석정 신라때 진평왕,고려때 충숙왕 

왕들이 노닐던 자리니 그 아름다운 경치 대단하구요.


조선시대에는 사회계급에 항거하던 임꺽정이 은거 투쟁하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요.





산 정상을 탐했으면 히히 호호 여유만만 쉽지 않을텐데

직탕폭포, 주상절리,기암절벽 

꽁~얼어진 얼음 위 살포시 잔설내려진 눈위 걷다보니

예쁜포즈 앙징포즈 엉거주춤포즈

담아내는 진사님이나 담아지는 영산님들의 표정 행복한 이날입니다.


내폼은 왜 이리 엉성한겨

모델 학원 기웃 한수 배워야할까 봅니다.































높이는 낮고 길이는 긴~직탕폭포

흐르는 물과 얼음이 어우러져 근사한 풍경 여름에 오면 지금보다 더 시원하려나요.

?














<도무지 선배님 작품>







 주상절리

^^





















말벌집

집 떠나 어디서 겨울나기을 하고 있으려나요.

?



기암절벽 주상절리 

영산 축구대표 연습장과 영산 모델 경연장

살아가는동안 오래도록 기억에 담아질 자리가 될듯 싶습니다.


다시 가실분 손들어 보아요.

_()_



봄이오면

...










너는 크고 나는 작지만 너을 내가 만들었단다.

어머니

^^






고석정

오늘은 내 시간이 조금짧아 그저 가지만 

다음 좋은날 한참 쉬어가리라.

^^



여유만만 어디로 가고픈날

그날에 다시찿아 저길을 걸을까 하는데

혹 시간 많은분 연락주시면 함께 가겠습니다.

..






잘보고 잘놀고 잘먹고 마시고 이만하면 되었지 더 바라면 욕심인 게지요.

새해 첫주 한탄강 얼음 트레킹 

...

기분좋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돌에 구멍이 있으면 돌이야 구멍이야

돌 구멍

0

살아가는동안

아프지 말고 단단하게 살아가자

^^



< 단단했던 高3시절 >



시간아 세월아

잔주름에 머리는 희어지고 

나이무게만큼 힘도 하나씩 도망가는 나이야

그래도 氣 죽지말고 팔팔하게 살아가자

^^


추운 겨울날에 다시가고픈 장소 철원 한탄강 입니다.

함께한 영산님 아름다운 산행 이여가시고

산그린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 산그린 선배님 작품 >

산 걸음 시작한 이후 이날같이 사진 대풍은 처음









근사한 작품 

사진 담아주신 선배님 의견도 묻지않고 잘랐습니다.

1타2피

&




송대소 주상절리

헤딩을 멋지게 하는 그 순간을 잡아주시려나 했는데

헤딩할줄을 예상 못하셨나 봅니다.

공 한부분이 얼어 머리가 쪼매 아팠습니다.

()





해뜨고 질때는

...

태여나서 살아가는 동안은 건강하게

사회속에 아낌 배려 어울림이 좋아야하고

인생의 마지막 홀로가는 길에는 미련 아쉬움 간직말고 훌훌털고 가야한다.

할수있다면 아프지 않을 만큼만 살다가자

적당히

....

말처럼 그리할수 있을까.


소망한다.

 



엉거주춤

2018년 빈손에 무엇인가 잡아보려 하는데

잡히려나 모르겠네요.

비워지니 가벼운데 잡으면 무거워지겠지요.

건강,사랑,행복 

잡아보려 하네요.

^^



자세 생각 아니날때는 하트가 가장 쉽더이다.

^^











송대소 주상절리 

꽁 얼어버린 강 공놀이 해보셨나요.

누가 가져다 놓은것인지 약간 바람 빠지고 한쪽은 얼어 딱딱한 

그래도 공놀이 할만 했습니다.

몸 풀리도록

<>




주인공은 따로있고 저는 멀리 지나는 행인이였는데 

분위기 괜찮아 잘랐는데

볼만하네요.

^^








자연설 아니고 인공 눈 언덕

^^



어린시절 초가집 처마에 매달렸던 고드름 

칼싸움하고 작은것은 얼음과자로 먹었던 기억있어 얼음 맛보기 시절에 고드름은 맛났었는데

이날 얼음맛은 물맛이였습니다.











한산성

2015년 10월 11일 



<삼성 갤럭시S-4 >


 

에구 에구

소리 절로 나온다.

나 이러다 치매 빨리 오는거 아니려나.

후~

이 나이에 이래도 되는거 맞나몰라

깜박 깜박이 하나둘 늘어가니

내 머리 스스로 때려야 하는날 늘어간다.

오늘도 그러하다.

..

카메라 밧데리 충전하며 메모리카드 빠져있는거 확인하고 껴야지 했는데

산성 도착 카메라 깨내면서야 아차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이런 젠장 머리 두어대 쥐어 박았다.

메모리카드 안끼웠다.

알고도 바로행하지 아니한 벌이로구나.

 

이제 내머리 내가 믿을수 없는 내가 되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그저 한두번 이니 괜찮으려나 생각도 들지만

이즈음 확실이 깜박이 늘어났다.

 

가을 담으려 산성 올라왔는데.

멍텅구리 카메라 들고왔으니 그 무게가 짜증 유발 거츠장스럽기 배가 되어진다.

스마폰으로 담아보는데 그마저 밧데리 눈끔이 달랑거린다.

 

정신차려 이친구야.

....


 

가을비

 

 

기다림이 길어져 목이 아프다.

주룩주룩 내려주면 좋은데

바람만 드세다.

 

어제는 반팔 오늘은 긴팔

가을 오는데 겨울이 함께하려나 보다.

반칙이다.

 

가을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갈증해소 되도록




행궁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시대 행궁터로, 2007년 6월8일에 사적 제480호로 지정되었다. 

남한산성행궁은 1624년(인조 2년)에 착공해 1626년에 완공된 조선시대의 별궁으로, 유사시에 임금이 임시로 머무르던 궁궐 중 하나였다. 

병자호란 때는 임시 궁궐로 사용되기도 했다. 남한산성행궁은 북한산성행궁, 화성행궁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행궁으로 꼽히는데, 

조선 역대 왕들이 남한산성의 군사적 가치를 특히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현재 행궁지는 구릉이 시작되는 곳의 약간 경사진 터에 위치하고 있는데, 일제시대에는 이곳에 면사무소가 있었다고 한다. 

《남한지(南漢誌)》에 따르면 숙종, 영조, 정조가 영릉(寧陵)을 참배할 때 이곳에 머물렀고, 

후대에는 지방관인 유수(留守)의 집무실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상궐(上闕) 73칸, 하궐(下闕) 154칸 등 총 3단 227칸으로 이루어진 행궁이었으나 모두 불에 타서 없어졌다. 

현재 남한산성행궁지에는 상궐, 남행각, 북행각, 재덕당, 좌승당 등이 복원되었다.


 

  

 

 

 

 

침괘정

한산성 동쪽 작은 언덕 위에 자리한 정각으로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축조하던 관리 이서가 숲 속에서 오랜 고각 하나를 발견했다. 

건조 연대는 불확실하지만 발견당시 주춧돌이 견고했고, 방에는 수척 높이에 달하는 온돌이 있었다. 

시험 삼아 아궁이에 불을 때어보니 온돌의 기능도 살아있었다. 당시 주민들은 이것이 백제 온조왕의 왕궁지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런 추측을 증명할 자료는 없다. 현재의 건물은 영조 27년(1751) 중수한 것이라, 

이서가 발견할 당시의 건물 형태는 짐작할 길이 없다. 침괘정이라는 명칭 역시 정조 때 붙여진 것이다.


 

 

 


숭열전

1638년(인조16년)에 지은 사당으로, 백제 시조인 온조왕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온조를 모신 사당은 원래 충청도 직산에 있었으나 선조 30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 

그러자 선조 36년 백제의 첫 도읍지였던 남한산성으로 사당을 옮기고, 이것을 인조 16년에 고쳐지었다.  

훗날 남한산성을 쌓을 당시 총책임자였고, 병자호란(1636) 때 싸우다 죽은 이서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원래 건물 이름은 ‘온조왕사’였으나 정조 19년(1795)에 왕이 ‘숭열’이라는 현판을 내려 숭열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정조대왕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정조의 인품과 성업을 칭찬하면서, 

혼자 있기가 쓸쓸하니 죽은 사람 중에서 명망 있는 신하를 같이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이에 정조는 남한산성을 쌓은 공로자이며 인조가 총애했던 이서를 같이 모셨다고 한다.


이서장군 1580∼1637(선조 13∼인조 15) | 시호 충정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인숙(寅叔), 호는 월봉(月峰). 본관은 전주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뒤 진도군수 등을 지냈고 23년(인조 1) 장단부사로 경기방어사를 겸임하는 한편 
김류·이귀(李貴) 등과 군사를 일으켜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를 세워 정사공신 1등으로 완풍부원군에 봉하여지고 호조판서에 보직되었다. 
26년 수어사가 되어 남한산성을 수축하였고 28년 형조판서를 거쳐 32년 특명으로 공조판서가 되어 청나라 침입에 대비하였다. 3
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적군을 막다가 진중에서 병사하였다. 산수에 능하고 독서를 즐겨하여 장서가 많았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남한산성의 온조왕묘와 인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화포식언해》와 《마경언해》가 있다.

 

 

 

 










수어장대

1624년(인조 2년)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든 4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은 곳이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臺)를 말한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안에서 최고봉인 일장산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어 성 내부와 인근 주변까지 바라볼 수 있다.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직접 이곳에서 군사를 지휘하여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45일간 대항해 싸웠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짓고 서장대라 불렀으나, 영조 27년(1751) 왕의 명령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지었다. 

건물의 바깥쪽 앞면에는 ‘수어장대’라는 현판이, 안쪽에는 ‘무망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무망루란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쪽 땅을 정벌하려다 실패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영조와 정조는 효종의 무덤에 제례를 드리고 상경하는 길에 이곳에 들러 선왕들의 유업을 되새기곤 했다. 

지금 건물은 1896년에 유수 박기수가 다시 지은 것이다.







깊어지는 가을

어울림이 아름다운 산성 

 담아 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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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5일

오후

^^

 

 

화사한 봄날인가 했더니 오후되며 바람이 불어든다.

몇날전 노루귀을 보고왔다는 친구말 생각나

오후시간

운중 친구와 선배님 두분 모시고 노루귀을 만나러 갔다.

 

 

 

 

 

 

 

 

 

 

 

 

 

 

 

 

 

개체수가 많이 보여 기분 좋았는데

^^

 

 

 

 

이런 개만도 못한 인간이 아직도 있어 씁쓸하기도

 

앞서간 어느진상이 그랬는지

여기저기 꽃모가지을 짤랐어요.

한동안 이런 짓거리 보지못했는데

이날 보았네요.

에라이

이 거시기할~잡 거시기야

 

 

 

 

 

 

 

 

 

 

노루귀을 처음 보신다는 선배님

노루귀 어찌이리 고운지..^^

 

선배님이 준비해오신 와인에 치즈 군고구마 그맛이  달콤

^^

산 능선길에 따끈한 유자차 입안으로 들어 몸가득 채워진듯 따끈했습니다.

 

 

 

 

 

 

 

 

노루귀도 담고 국사봉까지 올라 찬바람도 맞이하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내려와 청계사들어 잠시 돌아들고

내려 두루치기집에서 맛나는 식사하고

운중동에서 차나누고 그리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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