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四十九齋
2010년 7월 5일
2008년 용문산 용문사 돌아드는길
어머니&찰베이
&
수국
어머니 하늘가시고 50여일
메마른 눈이였는데 생활속에서 스쳐지나는 부모님 생각
귀에 눈에드는 마음들로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어머니 좋은자리 늘 평안하셨으면 하는 바램이였습니다.
카톨릭 연도
가톨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성인만 빼놓고 모두 그 영혼이 연옥으로 간다고 믿는답니다.
성인은 주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아 죄를 없이하면서 생활하였기에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어 바로 천국으로 가지만,
모든 사람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가 있어, 하나님을 바로 볼 수가 없기에 연옥으로 간다는 겁니다.
일단 죽으면 더 이상 죄를 없애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할 수 없기에,
자손들이나 남이 그 영혼의 죄를 위해, 천국행을 위해 기도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그것이 바로 연도(煉禱)랍니다.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산 자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불교와 천주교는 같은 셈입니다.
불교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바로 극락이나 지옥으로 가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다가, 산자가 49재를 지내면 그 일곱차례의 재를 통해 그 영혼의 상태가 점점 변화되어
마침내 극락이나 다른 세계에 안착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톨릭은 불교와도 달랐습니다.
불교는 49재를 지내면 그 영혼이 어딘가 안착한다고 믿는데,
가톨릭에서는, 그 영혼을 위해 제사때마다 계속해서 연도를 드린답니다.
과연 상례기간 중에 연도를 드렸다 해서 그 영혼이 천국으로 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연도는 필요하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그럼 자손이 없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는 빌어줄 사람이 없는 것 아닌가? "
그랬더니, 걱정할 것 없답니다. 평소 식기도할 때, 밥 먹고나서 드리는 기도에 이런 내용을 꼭 넣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마련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찬미를 받으소서.
죽은 모든 교우들의 영혼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서경대 이복규 교수홈에서 옮김
어머님 자리
살아실재 늘 바라보시던 성모님과 함께
꽃벌 담으려는 큰형수와 누이
의아리 향기가득
재(齋)는 인도 산스크리트 uposadha의 번역어로 재계齋戒와 재회齋會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재계는 마음을 청정히 가지고 나태해진 마음을 경계한다는 의미입니다..
49재는 영가가 돌아가신 날로부터 칠일마다 한번씩 재를 올리게 되는데
그것을 일곱 번 올립니다.
그 일곱 번째를 막재,또는 칠칠재라고 하기도 하고 사십구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된 제례문화祭禮文化로 자리 잡았으며,
의미는 제사라고 하는 제祭가 아니라 재공양齋供養이라고 할 때의 재齋라는 것이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써 부처님이나 또는 덕이 높은 스님들께 무엇인가 공양물供養物을 받들어 올린다는 의미다.
그래서 사십구재란 돌아가신 영가靈駕 에게 공양물을 받들어 올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십구재는 영가가 돌아가신날로부터 칠일마다 한번씩 재를 올리며,
처음 지내는 재를 초재라고 하고 그 다음부터 이재 삼재라는 식으로 부르고, 재를 올릴 때도 간소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십구일 되는 날 일곱 번째 올리는 재는 비교적 성대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십구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칠일만에 한번씩 재를 올리는 것은 몸을 벗어버린 영가가 몸을 가지고 있을 때 지은 업생을 받아 돌아가야 하는데
그 기간이 7일을 일주기로 하여 7주 기간 동안 계속되며,
그 기간동안 중음中陰 을 면하고 다음 생生을 받을 인연因緣이 정해져 본생처本生處 로 가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중음이란 이승과 저승의 중간 지점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사십구재는 『법화경』 사상과 『화엄경』 지장경』 『아미타경』 『약사여래경』 등의
사상에 근거해서 하는 의식입니다.
이제는 사십구재가 불교 의식을 뛰어 넘어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 의식으로 발전했으며,
우리 사회의 추모 문화로 정착되었다.
또한 불교의 사상이나 교리적인 내용을 떠나서
사십구재라고 하는 망자의 추모 행사로 그리고 우리민족 고유의 문화로 더욱더 발전 되어야 한다.
(나무소리 서각회 까페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