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세배돈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젓깨고요.
우리 우리설날은 오늘이래요.
노래 부르던 어린날에 설날은 유일하게 용문5일장날 계란꾸러미와 쌀 보리 팔으시어
설빔을 사다주시고 서울서 직장 생활하시던 큰형님은 끈달린 운동화 사다주셨지요.
그 기억이 초등학교 1~2학년때 기억이니 참 오래전입니다.
학교 신고가면 운동화 잊아버릴까 싶어 운동화는 숨겨두고 검정 고무신 신고 다녔지요.
계란이 돈이되어 공책사고 알사탕 사먹던 시절
시절 동네 집집마다 돌아들며 세배드리지만 엿이나 차례상에 올려졌던 사탕이나 약과 산자
감주 수정과 정도 먹거리가 주어졌을 뿐
세배돈은 주는집은 극히 드문 시절이였습니다.
60년대 후반 시절까지도 농촌에서 여유있는집은 동네 한두집 뿐이였은 듯 싶습니다.
국교 3년 겨울 방학 지금의 성남시 시절에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모란으로 이사
모란5일장 서는 골목에 부모님 잡화상을 시작
시절 부터는 설명절 큰집에서 차례지내고
또래끼리 두세명 짝이되어 버스타고 친척집 돌아들며 세배 돈을 받는 시절이 되었지요.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 누가 많이 받았나 시합을 하곤 했는데
촌수가 높았던 나는 늘 꼴찌였습니다.
시간 세월 지나 세배 받고 세배돈 주는시절
한시절 세배 돈 나이 학년에 따라 층층 생겨지더니
이제는 아이들 수가 적어지며 그 금액이 커져서 아이들이 맣을때나 적을때나 세배돈
나가는 것은 큰 차이가 없는 듯 싶네요.
<시절 제일 작은 아이도 이제는 지천명 나이 >
세배 돈 돌고 돌고 돌고
수야가 결혼을 하고 이제는 세배받고 용돈받는 것도 생겨졌네요.
세배돈 시간 세월따라
받고
주고
주고 받고
이렇게 나이들어지는 듯 싶습니다.
2017.01.28
골뱅이 & 소면
수야네 솜이
2017.01.30